코로나 이후 3년 만에 최고치
직장인 마모(36)씨는 지난 6월 갖고 있던 주식 수백만원어치를 전량 처분했다. 300만원을 조금 넘는 월급에서 신용카드 대금이 빠져나가고 나면 돈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그는 “5월에 가정의 달이라고 가족들과 모임을 갖고 친구들과 회식을 몇 번 했더니 졸지에 가계부가 적자가 됐다”며 “요즘은 커피 전문점 커피와 배달 음식을 끊었다”고 했다.
고물가와 고금리로 쓸 돈은 늘어났는데 소득은 별로 늘어나지 않는 상황이 2년째 이어지면서 소득에서 지출을 빼면 가계부가 ‘마이너스’가 되는 적자 가구 비율이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2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올해 2분기(4~6월) 적자 가구 비율은 23.9%로 1년전보다 0.9%포인트 늘어났다. 네 집 중 한 집꼴로 적자를 보고 있다는 뜻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2021년 2분기(24.4%) 이후 3년 만에 최고치다.
2분기 전체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은 496만1000원으로 전년 대비 3.5% 늘어났지만, 지출(381만706원)이 4.3% 늘어 소득 증가세를 웃돌았다. 소득보다 지출이 더 많이 늘어나는 현상이 2022년 3분기부터 8분기째 이어진 것이 적자 가구가 늘어난 원인으로 통계청은 보고 있다.
필수 생계비 물가가 오르면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저소득 가구의 타격이 특히 컸다.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적자 가구 비율(2분기)은 54.9%로 1년 전에 비해 2.2%포인트 늘었다. 1분위 가구 열 집 중 다섯 집 이상이 적자 상태인 것으로, 전체 가구 평균(23.9%)의 2배를 훌쩍 넘는다. 적자비율은 2분위 20.9%, 3분위 19%, 4분위 15.2%, 5분위(소득 상위 20%) 9.5% 등으로 소득이 높은 가구일수록 낮았다. 통계청 관계자는 “서민 가구에서 고물가·고금리 영향을 더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2분기 전체 가구의 이자 비용 지출은 월 평균 12만5147원으로 1년 전에 비해 4.8% 감소한 반면, 1분위 가구의 이자 부담은 1년새 10.8% 늘었다.
적자 가구의 증가는 내수 소비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금이나 이자 등을 제외하고 먹거리와 여가 등에 쓰는 소비 지출은 지난 2분기에 가구당 월 평균 281만3000원으로 1년새 4.6% 증가했다. 하지만 물가 상승분을 뺀 실질 소비 지출은 1.8% 늘어나는 데 그쳤다. 과일과 육류 등 식료품(-0.9%)과 술(-3.8%), 담배(-3.6%), 숙박(-4.6%) 부문에서는 실질 소비 지출이 감소세를 보였다.
고물가·고금리 ‘이중고’에 값싼 해외 직구에 눈을 돌리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분기 국내 소비자들의 해외직구 구매액은 2조149억원으로 작년 2분기에 비해 26%가량 늘었다. 분기별 해외 직구액이 2조원을 넘어선 것은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14년 이후 처음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해외 직구 물량이 늘어나면서, 그 반작용으로 국내 소비가 더욱 위축되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30대 후반 회사원 이모씨는 올 들어 중국 직구(직접 구매) 플랫폼인 ‘테무’를 자주 이용한다. 그는 “높은 물가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상황이라, 조끼 한 벌에 6000원 수준인 중국 직구 앱에 자연스레 손이 가게 된다”고 했다.